필자는 지금까지 두 번 삭발한 경험이 있다. 한번은 60년대 중반, 중학교에 갓 입학해 교칙에 따라 삭발했다. 그러나 그 후 중학생 삭발은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폐지됐다. 또 한 번의 삭발은 성년이 돼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할 때였다. 물론 필자의 경우는 당시의 규정에 따른 것이었으나, 정치인들이나 노동자들이 결연한 의지나 결의를 보여주고자 할 때도 종종 삭발이란 무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부인과 자녀, 그리고 친인척들의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촉발된,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야당 인사들의 릴레이 삭발이란 저항(?) 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두드러기’란 희귀병으로 군 면제를 받고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등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삭발은, 참으로 후안무치한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특히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 자진 출석하면서 당원들에게는 ‘출석 불응’을 지시하고, 약 5시간에 걸친 조사에서조차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제1 야당 대표로서의 갑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 대표에게 충성 맹세라도 하듯 무뇌(無腦) 야당 인사들의 삭발 릴레이 또한 꼴불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특히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고집하고 있는 제1 야당은 이미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정부 여당의 치명적인 악재에도 불구하고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지지율이 이를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前)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독선과 외고집 을 감싸고 두둔하고 싶은 생각 또한 추호도 없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대통령의 공약은 이미 휴지통에 버려진 지 오래다. 어디 그뿐인가. 탄핵과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로서의 초심마저 완전히 잃어버렸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대통령 하야론까지 등장했으니 어쩌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런데 정치란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할 수도 있다. 양보가 꼭 정치 공학적으로 지는 게임도 아니다. 이런 까닭에 설령 야당의 요구가 지나치고 못마땅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수용할 줄 아는 아량과 포용력을 가져야 지도자다운 지도자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51%의 국민과 야당이 강력히 반대한 조국 교수를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궤변으로 끝내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할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 국정 혼란을 자초하고 국론 분열마저 불러왔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국론 분열이 아니라는 자기변명으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있어 안타깝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 공천을 의식해 말 한마디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비겁함마저 보이고 있다.

조국 장관만이 검찰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대통령과 여당의 지나친 신뢰는 어리석은 편견이자 아집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 조국 교수보다 더 뛰어난 인재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인재를 널리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과거 정권들처럼 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수첩 인사, 회전문 인사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역대 장관 후보자 중 대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교수, 변호사들이 시국선언을 하면서까지 임명을 반대한 예는 없었다. 특히 각종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은 고사하고, 장관으로서 영(令)이나 제대로 서겠는지 대통령과 여당에 묻고 싶다.

모름지기 정치란 대립과 반목이 아니라 타협과 양보를 통해 상생의 길을 가야 한다. 지금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모두 3류 코미디 정치를 계속한다면, 한국 정치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할 뿐이다. 특히 바람 잘 날 없는 정쟁으로 얼룩진 여야 정치권을 매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지금 많이 피곤하다. 따라서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모두 뼈를 깎는 자기 성찰과 대오각성(大悟覺醒)이 절실히 필요한 작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