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우리들, ‘새로운 응답’은
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 재생 준비중
2019. 10. 27(일) 18:23 가+가-
시월이 막 반환점을 꺾었을 때, 그니까 16일 오후, 39년 전의 역사 위로 철학의 시간이 화사하게 내려앉았다. 5·18과 철학의 만남이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이뤄진 것이다. 한때 해직교수로서 ‘거리의 철학자’로 불린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부산 출신으로 독일 박사(철학)인 그는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의 산파로 이사장을 지냈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공동의장과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기도 했다.
김상봉의 이름자 앞에 ‘5·18 철학자’란 별칭을 붙인다면 그의 공부의 영역을 좁혀먹지 않을까 염려가 있긴 하지만, 많은 저서 가운데 특별한 두 개가 그 별칭을 떠받치고 있음이다. ‘5·18 그리고 역사’, ‘철학의 헌정-5·18을 생각함’이란 저서에서 5·18을 밀도 있게 철학하고 있다 함이다. 글발이 좋고 팩트를 관찰하는 눈이 깊어서인지 많은 팔로어를 보유한 칼럼리스트로도 유명하다.
16일 그날, 김상봉 교수의 ‘5·18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하여’는 이례(異例)가 셋으로 겹쳤다. 혼자서 80분 동안 치고 나간 내리닫이 강좌라는 건 그 하나이고, 전에는 아무한테서도 듣도 보도 못한 5·18 생각이란 건 둘이다. 그 셋은 울림이 컸더란 것이다. 맑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거나 까만 밤하늘을 숭숭 구멍 내며 쏟아지는 함박눈 같았다거나 누군가 광주의 오월을 물으면 이젠 옹골지고 다부지게 답할 수 있는 답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거나 등으로.
김 교수는 강좌의 들머리에서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헤겔(독일 철학자)의 이름으로 불러냈다. 헤겔이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태양이 창공에 자리 잡고 행성이 그 주위를 운행하게 된 이래 인간이 사상 위에서, 사상에 의거해서 현실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사상이 정신적 현실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고 칭송했다는 것인데, 5·18한테도 그런 송가(頌歌)를 바칠 수 있을 것인가, 김 교수는 묻는다. 이 물음은 대답된 적도, 물어진 적도 없다는 게 그의 답이다.
그 송가를 사유하기 위해 그는 3단계를 밟는다. 한국 민중항쟁사의 세계사적 의미를 끌어내어, 그 민중항쟁사 속에서 5·18의 위상을 잰 뒤, 이윽고 5·18의 세계사적 의미를 발명해낸다.
그는 단연코 말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의 민중항쟁사는 이 땅을 지배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역사이지만, 그 이면에서 보면 세계사적 모순과의 대결의 역사였다”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을 한국 민중항쟁사가 갖는 세계사 속 본질적 위상으로 길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헤겔의 칭송을 ‘자유의 실현’이라 압축하고, 서양적 자유의 이념 속에 숨어 있는 모순을 벗긴다. 제국주의의 운동 원리라는 게 따지고 보면 자기의 자유를 위해 남을 노예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모순이라는 것이며, 서양적인 것과의 ‘다름’이 곧 한국 민중항쟁의 독보적 고유성이라 성격 짓는다.
그는 한국 민중항쟁사에 ‘3능선’과 ‘1봉우리’를 갖다 댄다. 무장항쟁이 1능선(동학혁명-의병전쟁-무장독립투쟁), 비폭력저항(3·1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4·19혁명)은 2능선, 자기폭력(전태일 등)이 3능선이라면, 5·18을 3능선이 만나 밀어올린 봉우리와도 같다고 셈한다. 왜 그런가? 시작은 비폭력저항이었으나 공수부대의 폭동적 진압 및 총질에 맞선 무장항쟁, 전태일 같은 자기폭력의 ‘도청 불꽃들’이 그거라는 것이다.
“5·18이 한국 민중항쟁사를 통틀어 유독 눈부신 건 단지 3능선이 만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는 그는 세계사 쪽으로 돌려 5·18을 들여다본다. 80년 5월 그 봄날, ‘기적처럼 열린 항쟁공동체’를 들고 나온다. 이것이 그가 쏘아올린 세계사적 의미의 열쇳말이다. 5·18이 그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열어보였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 그 고통을 야기한 폭력에 대한 공동의 투쟁, 같이 싸우기 위해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것, 이런 것들이 그의 철학이 빚은 항쟁공동체다. 공동체를 이룬 이 세 가지 계기를 “폭력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 사랑이 다스리는 나라의 형성원리”라며 “헌혈의 피와 총과 수류탄 같은 무기와 주먹밥은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형상, (기독교적 표현을 빌리자면) 성육신(成肉身)한 사랑”이라고 찬미한다. 3계기 가운데 으뜸가는 원리는 뭘까? 그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을 서슴없이 제1로 내놓는다. 무장항쟁도 주먹밥도 피 흘리는 이웃을 향해 죽음의 공포를 잊고 달려가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지금 여기 살아남은 우리한테 그는 ‘새로운 응답’을 주문한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권리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먼저 응답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야 말로 5·18의 뜻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말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 자기 지키기를 내려놓은 이들의 결단에 우리 모두가 빚지고 있음 아닌가.
김상봉의 이름자 앞에 ‘5·18 철학자’란 별칭을 붙인다면 그의 공부의 영역을 좁혀먹지 않을까 염려가 있긴 하지만, 많은 저서 가운데 특별한 두 개가 그 별칭을 떠받치고 있음이다. ‘5·18 그리고 역사’, ‘철학의 헌정-5·18을 생각함’이란 저서에서 5·18을 밀도 있게 철학하고 있다 함이다. 글발이 좋고 팩트를 관찰하는 눈이 깊어서인지 많은 팔로어를 보유한 칼럼리스트로도 유명하다.
김 교수는 강좌의 들머리에서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헤겔(독일 철학자)의 이름으로 불러냈다. 헤겔이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태양이 창공에 자리 잡고 행성이 그 주위를 운행하게 된 이래 인간이 사상 위에서, 사상에 의거해서 현실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사상이 정신적 현실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고 칭송했다는 것인데, 5·18한테도 그런 송가(頌歌)를 바칠 수 있을 것인가, 김 교수는 묻는다. 이 물음은 대답된 적도, 물어진 적도 없다는 게 그의 답이다.
그 송가를 사유하기 위해 그는 3단계를 밟는다. 한국 민중항쟁사의 세계사적 의미를 끌어내어, 그 민중항쟁사 속에서 5·18의 위상을 잰 뒤, 이윽고 5·18의 세계사적 의미를 발명해낸다.
그는 단연코 말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의 민중항쟁사는 이 땅을 지배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역사이지만, 그 이면에서 보면 세계사적 모순과의 대결의 역사였다”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을 한국 민중항쟁사가 갖는 세계사 속 본질적 위상으로 길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헤겔의 칭송을 ‘자유의 실현’이라 압축하고, 서양적 자유의 이념 속에 숨어 있는 모순을 벗긴다. 제국주의의 운동 원리라는 게 따지고 보면 자기의 자유를 위해 남을 노예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모순이라는 것이며, 서양적인 것과의 ‘다름’이 곧 한국 민중항쟁의 독보적 고유성이라 성격 짓는다.
그는 한국 민중항쟁사에 ‘3능선’과 ‘1봉우리’를 갖다 댄다. 무장항쟁이 1능선(동학혁명-의병전쟁-무장독립투쟁), 비폭력저항(3·1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4·19혁명)은 2능선, 자기폭력(전태일 등)이 3능선이라면, 5·18을 3능선이 만나 밀어올린 봉우리와도 같다고 셈한다. 왜 그런가? 시작은 비폭력저항이었으나 공수부대의 폭동적 진압 및 총질에 맞선 무장항쟁, 전태일 같은 자기폭력의 ‘도청 불꽃들’이 그거라는 것이다.
“5·18이 한국 민중항쟁사를 통틀어 유독 눈부신 건 단지 3능선이 만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는 그는 세계사 쪽으로 돌려 5·18을 들여다본다. 80년 5월 그 봄날, ‘기적처럼 열린 항쟁공동체’를 들고 나온다. 이것이 그가 쏘아올린 세계사적 의미의 열쇳말이다. 5·18이 그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열어보였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 그 고통을 야기한 폭력에 대한 공동의 투쟁, 같이 싸우기 위해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것, 이런 것들이 그의 철학이 빚은 항쟁공동체다. 공동체를 이룬 이 세 가지 계기를 “폭력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 사랑이 다스리는 나라의 형성원리”라며 “헌혈의 피와 총과 수류탄 같은 무기와 주먹밥은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형상, (기독교적 표현을 빌리자면) 성육신(成肉身)한 사랑”이라고 찬미한다. 3계기 가운데 으뜸가는 원리는 뭘까? 그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을 서슴없이 제1로 내놓는다. 무장항쟁도 주먹밥도 피 흘리는 이웃을 향해 죽음의 공포를 잊고 달려가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지금 여기 살아남은 우리한테 그는 ‘새로운 응답’을 주문한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권리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먼저 응답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야 말로 5·18의 뜻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말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 자기 지키기를 내려놓은 이들의 결단에 우리 모두가 빚지고 있음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