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부는 농업개도국 지위 포기를 발표했다. 농업인들은 항의를 하고, 한편에서는 ‘아직도 우리가 개도국이냐, 보조금 많이 받던데 농민들 너무 한다’는 등 비난의 댓글들이 넘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정말 그렇다면 나도 나를 비판하겠지만, 그전에 농산물 개방 압력이 가장 심한 미국의 농업 역사를 살펴보자.

90년 전 10월24일 검은 목요일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 시작됐다. 산업혁명과 컨베이어 혁명, 1914년 시작된 1차 세계전쟁으로 세계의 공장과 식량기지 역할과 전쟁 후 복구사업으로 초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경제는, 그간의 축적된 자본에도 불구하고 과잉 생산 설비로 인한 공급과잉과 노동자들의 구매력 저하로 결국 1929년 주가폭락과 함께 전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얼마 뒤 전문가들은 경제공황의 더 큰 주범으로 ‘트랙터’를 꼽았다. 트랙터는 과연 무슨 죄를 졌을까?

1910년도 미국의 밀산업은 경제성장으로 인한 소비증가와 1차 세계대전으로 수출까 지 겹치면서 최고의 수익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牛馬의 쟁기질로는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1916년 때마침 트랙터가 대량 보급되기 시작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할부판매로 당장의 큰 금융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던 트랙터는 농업 생산성을 최고로 향상시켰고, 황무지 개간으로 생산 면적이 대폭 증가했다. 더불어 투기자본이 유입되고 농지가 폭등하는 등 심각한 버블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거품경제의 생산과잉은 1918년 전쟁 후 몇 년 뒤 가격폭락의 기폭제가 되었다. 결국 국민의 60% 이상이 거주하던 농촌은 채무불능의 농민과 일자리 없는 노동자, 직격탄을 맞은 은행과 투자자들이 뒤엉켜 결국 미국 경제대공황을 촉발시켰고, 동시에 반복되는 생산과잉과 소비감소로 농민 소득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당시에 미국은 농산물의 생산이나 가격을 조절하는 法이 없었다. 다급해진 연방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하여 휴경농지를 늘리고, 굶주린 사람들의 약탈을 총으로 막으면서 까지 생산과잉 된 농산물을 강제 폐기하고, 농산물 담보 대출, 수매 비축 등 총 생산량과 소비지 공급량을 잔인할 정도로 줄여 농산물의 가격을 지지하는 ‘농업조정법’을 시행했다.

농업조정법의 시행으로 가격이 상승해 농민들의 소득은 증가됐다. 시행 후 불과 3년 뒤 미국 대법원에서 농업조정법 일부에 대해 위헌 판결이 내려졌지만, 미 정부는 편법으로 보조금 정책을 계속 유지하였고,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미국 농업정책의 기조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편법을 정책(ex. BLUE BOX 등)으로까지 개발해 세계에서 농업 보조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 미국의 트럼프의 으름장에 기다렸다는 듯 찍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도 화가 나지만, 더 실망스러운 것은 편법까지 제도로 만들어 자국 농민들을 보호하는 미국의 모습은 보지 않고, 대안과 대책도 없이 그저 순간만 넘기면 농민들이 뭐 어쩌겠냐는 듯한 경제부총리의 발표와, 농업을 대표하는 관료들이 들러리처럼 그 자리에 함께 서있는 모습은 참 보기 힘들었다.

농업개도국 지위 포기의 대책으로 나열한 공익형직불제, 청년후계농육성, 로컬푸드 육성, 스마트 팜 등은 개도국 지위 포기와 무관하게 원래 추진해오던 정책들이었고, 매년 0%대 증가율의 농업 예산을 내년도에 4.4% 증액하는 것이 국가 전체예산 9.3%의 증가율과 비교하면 과연 ‘증액과 대책’이라고 표현해야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나라 1년 평균 쌀 생산량이 약 380만t, 매년 30만t 정도가 과잉돼 쌀값이 폭락하고 농민들은 힘들어 시위도 했다. 그걸 보고 농민들이 맨날 데모나 한다고 하겠지만, 핸드폰과 자동차를 팔기 위해 쌀이 과잉되더라도 무조건 매년 수입해야하는 의무수입물량이 약 40만t이다. 40만t을 수입하지 않으면 시장 가격만으로도 쌀농사에 대한 댓가는 충분했을 것이다. 올해는 태풍의 영향으로 수확량이 떨어져 쌀값이 인상될 것 같다. 그런데 가구당 소득으로 환산하면 무려(?) 300만원 수준이다. 제 할 일만 하던 ‘트랙터’의 잘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