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화사하다. 무채색의 대지가 새 옷을 갈아입었다. 매화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산수유도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물가에서는 버드나무가 새잎을 내기 시작했다. 대지에서는 쑥, 냉이를 비롯한 들풀들이 일제히 땅을 뚫고 푸른빛을 드러내어 다른 식물들의 겨울잠을 깨운다.

봄을 맞이한 대지가 나를 자연 속으로 불러낸다. 산수유꽃을 찾아 구례로 향한다.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는 지리산 잔설이 녹기 전에 꽃을 피워 봄이 왔음을 알린다. 구례군 산동면에 들어서자 온통 노란색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도, 산자락 밭도, 심지어 가로수까지도 산수유꽃으로 노랗게 채색됐다.

하천가 밭에는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노랑 꽃터널을 지나는데 꽃마차를 타고 가는 것 같다. 하천가에 자리한 상관마을도 산수유꽃동네가 됐다. 하천을 따라 가다가 다랑이논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니 산동면을 감싸고 있는 지리산줄기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만복대, 고리봉에 감싸인 여러 마을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산수유꽃으로 피어난 원좌마을로 들어선다.

앞쪽 다랑이논과 어울린 마을풍경이 봄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다랑이논은 농작물을 심기위해 밭갈이를 해놓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택들은 산수유로 꽃을 피웠다. 원좌마을은 산수유나무가 많은 마을이지만 관광객의 발길이 반곡마을이나 상위·하위마을에 집중돼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걷는데 소박한 돌담과 만개한 산수유가 그윽하고 화사하다. 불과 1-2주 전만 하더라도 무채색이었던 대지가 어느새 꽃 세상으로 바뀌었다. 생명은 이토록 경이롭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은 계절의 신비를 가장 실감나게 느끼게 해준다.

다랑이논과 어울린 원좌마을풍경이 봄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다랑이논은 농작물을 심기위해 밭갈이를 해놓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택들은 산수유로 꽃을 피웠다.

산수유문화관에서 산수유사랑공원이 조성돼 있는 작은 동산을 오른다. 산수유사랑공원에 올라서니 사방에서 산수유꽃물결이 펼쳐진다. 지리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 산동면은 노랑 채색화로 탈바꿈됐다. 산수유사랑공원은 산수유꽃물결을 가장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산수유사랑공원에서 바라본 산수유꽃물결. 산수유사랑공원은 산수유꽃물결을 가장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산수유사랑공원 동쪽 비탈에 있는 방호정이라는 편액이 붙은 정자로 내려선다.

방호정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시를 지으며 나라 잃은 마음을 달래고 미풍양속을 선양하기 위해 1930년 이 지역 유지들이 세웠다. 방호정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시회를 열기도 했다.

평촌교를 건너 사시천을 따라 걷는다. 사시천을 건너 만난 평촌마을 역시 산수유꽃과 함께 봄을 즐기고 있다. 사시천변으로 이어지는 산수유꽃길을 걷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이 다정하다. 꽃은 사람들의 관계까지 돈독하게 해준다.

구례군 산동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수유 군락지다. 산수유 과실이 익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상순에 빨간 열매를 채취한다. 산수유는 오래 전부터 한약재로 사용됐다. 산수유 전국 생산량의 70%가 이곳 구례군 산동면에서 생산된다. 구례 산수유의 역사는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 년 전 중국 산동성 처녀가 구례로 시집오면서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진다.

산수유가 고급 한약재로 잘 팔리던 시절 산수유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고 해 이 지역사람들은 ‘대학나무’라 불렀다.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는 지역주민의 주요 소득원이자 관광자원이다.

사시천을 따라가는데 산수유나무가 도열해 하천을 노랗게 장식하고 있다. 하천은 반석이 넓게 자리 잡아 아름다움을 더한다. 깔끔한 반석과 어울린 산수유꽃은 골짜기 정면에 솟아있는 지리산 만복대와 행복하게 어울린다. 만복대를 하얗게 덮은 눈과 노란 산수유꽃이 두 계절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반곡마을 계곡은 상위마을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사시천은 반석이 넓게 자리 잡아 아름다움을 더한다. 깔끔한 반석과 어울린 산수유꽃은 골짜기 정면에 솟아있는 지리산 만복대와 행복하게 어울린다. 만복대를 하얗게 덮은 눈과 노란 산수유꽃이 두 계절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사시천 서쪽은 대음마을이고 동쪽은 반곡마을인데, 두 마을 사이에는 대음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반곡마을 돌담길 역시 산수유와 어울려있다. 반곡마을 쪽 하천변 산수유꽃밭에는 데크길이 놓여있다. 산수유꽃으로 둘러싸인 데크길을 걷고 있으니 마치 꽃바다를 헤엄쳐가는 것 같다.

대음교에서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하천에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징검다리에서 200m 쯤 데크길을 따라가다가 상위·하위마을로 통하는 도로로 올라선다. 하위마을로 가는 도로에서는 만복대가 가깝게 다가온다. 길가에서 만난 홍매화가 노랑물결 속에서 군계일학처럼 빛난다.

하위마을에 도착해 마을 골목길로 들어선다. 하위마을에는 유난히 돌담길이 많다.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에는 파란 이끼가 끼어있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산수유꽃은 돌담과 옛집들까지 화사하게 비춰준다. 양철지붕을 한 폐가도 어김없이 산수유와 어울려있다.

하위마을에는 유난히 돌담길이 많다.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에는 파란 이끼가 끼어있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산수유꽃은 돌담과 옛집들까지 화사하게 비춰준다.

하위마을 돌담길을 걷고나와 계곡가로 난 숲길을 따라 상위마을로 향한다. 길 아래로 맑은 물이 바위를 넘고 넘어 흘러간다. 계곡길은 상위마을로 이어진다. 계곡가에 피어있는 산수유꽃이 맑은 물위에 노란 그림을 그려놓았다. 상위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옆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상위마을 역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을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 뒤덮고 있다. 산수유마을로 알려진 상위마을에는 꽃구경을 온 사람들로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만원이다. 꽃 속의 선남선녀들은 이미 예쁜 꽃이다.

상위마을과 하위마을은 구례군 산동면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지대가 높은 산골에 자리하다보니 농경지가 적다. 이곳 주민들은 부족한 농경지를 대신해 집 근처 돌담이나 마을 어귀, 계곡 등에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산수유 천국으로 변한 아름다운 풍경은 주민들에게는 치열한 생계수단이자 삶의 문화다.

마을 뒤쪽에 있는 산유정이라는 정자 근처에서 상위마을과 하위마을을 내려다보니 노랑물결을 한 꽃동네가 눈부시다. 노랗게 채색된 꽃동네는 지리산에 감싸여 요람처럼 포근하다. 세상 모든 곳이 꽃처럼 아름답고, 요람처럼 포근했으면 좋겠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구례 산수유길은 3월 중순 산수유가 꽃필 때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소박한 돌담과 계곡, 주변 산봉우리들과 조화를 이룬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제1코스(꽃담길) : 산수유문화관→사시천→반곡마을→징검다리→평촌마을→평촌교→방호교→산수유사랑공원→산수유문화관(2.8㎞, 1시간 소요)
※제2코스(사랑길) : 산수유문화관→수석공원→원좌마을→상관마을회관→상관교→방호교(3.1㎞, 1시간 소요)
※제3코스(풍경길) : 하위마을버스정류장→상위교→돌담길→산유정→하위마을버스정류장(1.7㎞, 40분 소요)
▶제2코스→제1코스→제3코스 순으로 3개 코스를 연결해서 걸을 수 있다. (9㎞, 3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산수유문화관(구례군 산동면 상관1길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