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대학이 위기라고 한다. 대학의 가장 큰 위기로 학령인구 감소로 입학자원이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저출산으로 대학에 입학할 학생이 줄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대학의 절반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하고, 고교생의 대학 진학률도 떨어져 이런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다.

대학에 다닐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도 대학이 당면한 위기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대학이 시대에 맞는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인터넷으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찾을 수 있고, AI가 맞춤형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연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학은 교육을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며, 지식을 축적해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과 AI가 교육과 지식축적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AI는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기를 지나면 대학의 연구기능도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이 시기를 2029년쯤으로 보고 있다.

대학의 역사를 보면, 대학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지 못해 위기를 겪은 경우가 있다. 12세기에 폭발하는 고등지식 수요를 담당하기 위해 출발한 대학은 중세시대를 지나며 인문주의 부흥과 과학혁명을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대학은 근대 사회의 발전을 견인할 과학 기술의 혁신을 이끌지 못했다. 대학이 사회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그 기능을 다른 사회기관이나 국가가 담당했다. 결국, 18세기에 이르러 대학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사회와 괴리를 극복해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근대 대학이 경험했던 역할과 기능 상실은 현재 우리 대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의 대학이 디지털 기술이 중심이 되는 사회 요구에 부응하고,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우리 대학은 교육, 연구, 봉사 모든 영역에서 사회 요구와 시대적 흐름에 뒤떨어져 있다. 혹자는 우리 대학을 “19세기 교육방식으로 20세기 교육자가 21세기의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대학이 사회의 요구와 수요에 꼭 부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존재 그 자체로 지성의 전당, 공동체 교육의 산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자 역할을 한다. 대학이 미래 세대를 교육하고, 새로운 연구를 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일 자체가 미래 동력인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이 시대를 선도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기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상을 바꾸고 있는 AI 영역만 놓고 볼 때, 대학이 기술과 산업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이 시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대학이 원천기술 개발 등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기업의 요구와 필요를 쫓아가는 모양새다. AI 시대에 논란이 될 사회 윤리나 철학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 영역은 기업이나 국가기관이 훨씬 앞서서 주도하고 있다.

최근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적인 대학들이 기존대학의 역할을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온라인 중심 대학은 기존대학의 형식과 제도, 그리고 틀을 뛰어넘은 교육과 연구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혁신을 추구하는 일부 대학은 인터넷과 AI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현장과 연계한 새로운 방식으로 교육하고, 기업 및 국가와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연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대학의 규모가 축소되고, 자원이 줄어드는 것만이 위기가 아니다. 대학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흔쾌히 답을 못하는 것이 진정한 대학의 위기이다. 이제라도 교육과 연구, 그리고 지식축적과 전수방식을 바꿔야 한다. 많은 대학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더 속도를 내어 더 큰 혁신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학의 본질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대학이 고유역할을 찾아 미래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