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자에게 가장 큰 화두는 퇴임 후 무엇에서 가치, 보람,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교수 중에서 조용히 지내온 사람들은 퇴임 후에도 그리 지내기 때문에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왕성하게 활동해온 사람들은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 방은 어두워지고, 컴퓨터는 작동을 멈춘 것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퇴임 후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말로는 재미있게 지낸다고 하면서도 혹시나 안으로는 공허함, 무의미함을 느끼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일벌레, 일중독자들이 하는 질문일까? 여러 생각이 스친다.

퇴임 후 공허함을 느끼는 대표적인 사람의 하나로 대통령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임기가 끝날 것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만, 막상 끝나고 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 숨 쉴 틈이 없이 바빴던 일정도, 엄청난 권력도, 그리고 화려한 지원 인력도 모두 사라진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마차는 호박으로, 마부는 쥐로 되돌아가고, 아름답던 옷은 누더기로 변해 혼자 남겨진 신데렐라가 된 느낌이라던 미국 전직 대통령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임기를 마친 날 직원들이 시골집으로 짐을 옮겨준 후 극소수 경비 인력을 제외하고 모두 떠난 자리에 노부부만 남게 되니 그리 느꼈을 것이다.

동일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을 느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들의 태도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빅터 플랭클은 1930년대 비엔나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우울증과 자살 연구를 했다. 그러다가 다른 유태인들과 함께 아우슈비츠에 갇히게 됐다. 거기에서 그는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수용자와 견디지 못하고 의욕을 잃거나 자살하는 수용자 구분 짓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동료 수용자들을 연구했다. 그 결과 발견한 것은 ‘의미’였다. 생존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보다 폭넓은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들, 목표나 관계 등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 즉,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들은 생존 확률이 높았다.

나이 들어 정년 퇴임할 경우, 몇 달간은 그동안 일에 지친 심신을 쉬게 하고, 버킷 리스트를 지워가며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은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공허함을 느낀다. 신앙생활 속에서 혹은 손주를 돌보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 자신이 해왔던 일을 바탕으로 사회에 보탬이 될 보람 있는 활동을 하며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지내며 작물과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활동을 통해 충분히 보람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평생 해온 공부를 바탕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안일 것 같다.

로마 시대의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노년이 되면 육체노동은 어렵더라도 세상과 지혜는 나눌 수 있다. 퇴임 후의 삶을 가장 잘 준비하는 방법은, 현직에 있는 동안에 자신을 세상에 보탬이 될 사려 깊고 판단력이 뛰어난 현자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자 하면 오히려 ‘꼰대’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노년을 ‘인생에 있어서 매우 영예로운 한 시기’가 되도록 하려면 ‘스스로를 지켜가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100세에 가까운 사람 중에 총명함과 집중력을 유지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고 있다. 이들을 지켜보며 나는 언제까지 내 생각을 세상과 공유할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는 나에게 허락된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총명함, 열정, 집중력 등이, 밖으로는 내 생각에 대한 세상의 의미부여가 내 활동 지속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물러나야 할 때를 스스로 알거나, 주위에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친구나 선후배를 두고 있을 때,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