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책맹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책맹’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난 마당이다. 책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읽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독서가 우리 생활에 필요 이상으로 와닿지 않은 도구로 인식된 탓이 아닐까 한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종합독서율은 43.0%로,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1년 대비 4.5% 포인트 감소했으며, 1994년 독서 실태 조사(86.8%)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국민 수준이 고작 이 정도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대한민국의 독서문화 실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올 예산 가운데 국민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책정한 59억8천500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그리고 지역 서점의 문화 활동 지원과 출판사 대상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등의 관련 예산 100억 원도 빡빡 지워버렸다.

게다가 지역 서점 지원 예산 11억 원마저도 없애버려 독서 생태계 파괴에 힘을 보탰다. 이 예산은 그동안 지역 서점이 저자를 초대해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각종 문화 사업을 열던 밑천이었다. 지적 교류에 목말랐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지역 서점을 찾았고, 인터넷 서점으론 일굴 수 없는 문화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런데 올해는 그 싹을 모두 잘라버린 것이다.

정부가 올해 독서진흥과 서점, 도서관, 출판 관련 정책을 흔들고 예산 전액을 삭감한 건 ‘국민은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이나 진배없다. 독서는 개인의 취미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공동체와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적 독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후자의 경우는 국가 미래의 투자 성격이 강해 그 가치성은 매우 크다. 이처럼 중차대한 국가 미래 투자정책을 입맛에 따라 없애버리고 제 역할을 회피하는 건, 국민의 의식을 퇴행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독서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내재해 있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원이자 원동력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이며, 그 교육을 완성하는 게 바로 독서다. 결국 독서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꾼다. 따라서 독서의 힘은 ‘위대함’을 넘어 그 가치가 매우 크고도 광활하다. 이것이 독서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정부가 국민 독서문화에 대한 쇠락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했는지, 부랴부랴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비 독자의 독자 전환과 책 친화 기반 조성을 목표로 12개 정책과제가 들어있다.

골자는 이렇다. 업무나 육아 등으로 인한 비 독자를 위해 독서 경영 우수직장 인증과 기업-도서관 연결, 공동보육 기관의 독서 기반시설과 프로그램 지원을 한단다. 또 독서 습관 형성을 위해 부모 대상 독서교육 자료를 개발·보급하고, 가족 단위 프로그램과 독서 이력 관리를 지원하는 등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글쎄, 정부가 호들갑을 떨면서 내민 독서문화진흥정책이 과연 얼마나 국민 생활 속에 녹아들진 의문이다. 문화정책은 기계적·시스템적 규격화나 빵틀에 넣고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식의 접근방법으론 성공할 수 없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독서문화정책은 이미 1970-80년대에 우려먹었던 것들이어서 새로울 게 없다. ‘책맹의 시대’에 걸맞은 정책이 절실한 데…,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