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것을 뜻하는 ‘추호지말’(秋毫之末)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죠. 이번 전시 ‘가을 짐승의 털끝’은 장자의 제물편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제 작업은 만물을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지난 3월 전남대 예술학장으로 부임한 중견 한국화가 허진 개인전 ‘가을 짐승의 털끝’이 다음달 7일까지 경기도 파주에 있는 갤러리 이레에서 열린다.

지난해 9월 서울 신촌에서의 대규모 개인전 이후 9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유목동물’ 시리즈와 ‘이종융합동물’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2020-2’

학장으로 부임하며 학교 일에 매진하면서도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허 작가는 전시에서 200호 2점, 180호 2점 등 신작 위주 24점 작품을 선보인다.

관계성에 입각한 그의 작품에는 야생동물과 인공물이 서로 엉켜있다. 여기에는 그림 속 표현된 다양한 존재의 관계를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또한 내포돼 있다.


“결국 제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탐구입니다. 야생 동물과 인간, 인공물의 이미지를 한데 등장시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성찰하고 현대인이 잊고 있는 본성 즉 자연을 일깨우는 작업이죠.”


허 작가는 이번 전시 오프닝에서 특별한 아트북을 공개하기도 했다.

여러 필자의 글쓰기를 연계한 매거진형 아트북 ‘HURZINE’은 그의 이름과 매거진의 ZINE을 합성해 만든 콘텐츠로, 작가의 33년 작품세계를 매력적으로 담아냈다.

허진 작가와 이근정 편집자, 임문택 북디자이너의 협업에 최석원 미술 비평가, 이승훈 전시기획자가 함께 했다.

도판·텍스트의 조화와 함께 허진 작가에 대한 인물 에세이, 비평문, 대표작 소개, 인터뷰, 연보 등이 총 5개의 목차로 나뉘어 구성됐다.

“기존 화집이나 전시도록 형식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출판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아트북이에요.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 3인 협업 체제로 만들어졌죠. 각자의 기량을 발휘해 만들어진 실험적 간행물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개념미술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이번 호 ‘HURZINE’은 작가 본인 이름을 그대로 내걸며 ‘허진’이라는 한 화가에 집중하고 있지만, 작가는 향후 콘텐츠를 개발해 동료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을 포함한 2호, 3호도 발간하고 싶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추호지말’(秋毫之末)의 미학, 파주 갤러리 이레에서 개인전 ‘가을 짐승의 털끝’을 여는 허진 작가

/최명진 기자